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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1392~1897)는 약 500년간 지속된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긴 왕조로, 고려의 멸망 이후 이성계가 세운 중앙집권적 유교 국가였다. 국호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받은 것으로, ‘조화롭고 선한 나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은 유교 이념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정비하고, 성리학을 통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초기의 조선은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이 주도하여 권문세족의 부패를 바로잡고, 백성을 위한 새 질서를 수립하는 데 힘썼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편찬해 국가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고, 신분 질서를 재편하여 양반 중심의 사회 구조를 확립했다. 이후 세종대(1418~1450)에 이르러 조선은 문화와 과학기술, 학문이 황금기를 맞이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해 백성들이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했고, 측우기·앙부일구·혼천의 등의 과학기구를 제작하여 농업과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집현전을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고, 의학서와 농서, 역법서 등을 편찬함으로써 민생 안정에 주력했다.
그러나 세조 이후 왕권이 강화되면서 신하들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훈구파와 대립하였고, 이로 인해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사화’가 연이어 일어났다. 사림은 억압 속에서도 향촌 사회를 중심으로 서원을 세워 학문과 도덕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문화를 이어갔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 중기 이후 사회의 근간이 되었으며, 사림의 가치관은 조선 사회의 정치 윤리와 교육제도에 깊이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은 조선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전쟁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의병의 저항이 나라를 지탱했으나, 국토는 큰 피해를 입었다. 병자호란에서는 청나라에 항복하며 조선의 자존심이 무너졌지만, 이후 조선은 실리 외교와 내부 개혁을 통해 점차 안정기를 되찾았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실학이 등장해 사회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은 토지 제도 개혁, 과학기술 진흥, 합리적 행정 운영을 강조했다. 정조(1776~1800)는 탕평정치를 실시해 붕당 갈등을 완화하고,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과 행정을 함께 발전시켰다. 또한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서학(천주교)이 전래되면서 사상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세도정치가 강화되며 권력이 일부 가문에 집중되었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다. 탐관오리의 부패와 농민 착취, 잦은 자연재해는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이에 19세기 중반 동학농민운동(1894)이 일어나 사회 개혁과 외세 배척을 요구했으나, 결국 일본의 침략과 맞물려 조선의 국운은 기울어졌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외세의 간섭 속에 1910년 일본에 병합되며 500년 조선 왕조는 막을 내렸다.
조선은 긴 세월 동안 유교를 중심으로 한 질서와 전통을 유지했으며, 한글 창제와 과학기술, 예술, 학문의 발전으로 한국 문화의 토대를 형성했다. 동시에 그 내부에는 신분 차별과 권력 독점, 보수적 사고가 자리해 근대화를 늦추는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정서와 사회 구조 속에 깊이 남아 있으며, 그 흥망의 과정은 한민족이 걸어온 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역사적 자산으로 평가된다.